최근들어 치열한 삶에 대한 생각을 종종한다. 가끔 목사님 설교에 등장하는 높은 교육열의 동네 아줌마들이야기... 4살부터 영어교육을 하고 초등학교때는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중학교때는 고등학교 공부를 고등학교때는 미국 대학 입시준비를 하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왜 그렇게 치열하지 않을까...', '왜 나는 꿈이 없을까...'따위의 치열한 삶에 대한 생각...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지도 않을거라서 항상 멀게만 느껴지던 그네들의 이야기... 그네들이 듣는다면 혀끝을 찰지도 모를 준비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삶에만 익숙한 내게 간만에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읽으며 묘한 "내 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존 그녀의 소설이 다소는 멋들어진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번은 조금 다르게... 어린아이에서 부터 50이되는 시기까지 한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는 소설... Fiction이지만 2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묘한 위안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내편"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삶은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치열하다.
요즘 별로 삶이 재미가 없었다. 아니 쭉 그랬었던 것 같다. '왜 내 삶에는 치열함이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냥 그저그런 학생시절 부모님께 제대로 반항해본적도 없고, 입시준비로 그렇게 스트레스 받은적도 없고... 심지어 그렇게 힘들다던 IMF시절 취업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래서인지 내겐 삶에 치열함이 결여된 느낌이랄까... 힘들이지 않고 인생을 살아온게 아닌가하는...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마리"가 겪는 그 "치열한 삶"을 보면서 나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 몰래 만나던 이성친구하며... 전기 대학시험의 낙방, 그렇게도 공부라면 자신있던 내게 어느날 날아온 대학시절 두번의 학사경고... 그래서 떠났던 군대생활, 그 뒤에 영화처럼 찾아온 사랑과 3년간의 남부럽지 않은 연애시절... 우연히 입사하게된 선배 회사에서의 다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미친듯 일에 매진했던 일들... 소설을 읽는 내내 하나하나 떠 오른다. 누군가 처럼 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미친듯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내 삶에도 그들 못지 않은... 아니 그네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치열함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면... 표현을 못할 뿐, 헛웃음이 날만큼 철없던 시절, 지금생각해도 아찔한 순간들... 다들 있게 마련 아닐까... 그렇게 삶은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치열했던 것이다. 소설속의 마리의 삶이 그다지 특이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그래서인지 소설 후반부 마리가 자신의 딸 사키를 대하는 모습에 십분 공감이 가는 걸지도 모른다. 과연 딸을내어놓고 키우는게 잘하는 건지 과거에는 의심하던 내게...
Let it be...
이런걸 두고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대여섯살 아이때부터 50살이 되어 20대 여자아이의 엄마가 될때까지의 이야기기니까... 10대 주인공은 남자를 따라 가출하고 뒤늦게 대학을 가지만 길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어렵게 들어갔던 대학도 포기해버린다. 하지만 그 남자의 죽음, 남겨진 아이...
요즘 주식 시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 저렇게 오를줄 알았으면 미리 사둘껄...' ㅋ~ 웃긴 일이지만 심지어 시뮬레이션도 해본다. '음... 집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저 주식에 투자를 했으면... 얼마를 벌 수 있었을지도...'하면서... 말도 안되는 후회를 하곤한다. 뭐 인간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그런일 다반사다... 그때 마다 하는 생각 - 누군가의 싯구절로 기억되는데 -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은 그런 생각에 젖어든다.
소설을 보는 내내 비슷한 생각을 해본다. 몇페이지 사이에 몇년이 흘러가는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속)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너무 또렷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훨씬 강하다. '이그~ 대학은 졸업하지...', '그냥 결혼하는게 나았잖아' 등등 (이상하게 그녀의 소설 주인공은 여성인데도 감정이입이 쉽게 된다.) 하지만 소설의 뒤로 가면 갈 수록 그때(과거) 알지 못해 실수하고 넘어졌던 것들이 그녀를 얼마나 성장시키고 있는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던들 뭔가 바뀔게 있을까? 대학을 졸업한들 그사람과 결혼을 한들 전체 인생에 있어 큰 변화가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몰라 실수하고 넘어진 덕분에 성장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었구나 싶다.
뭔가 알아내고 그래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실수 없이 해나가려는... 하지만 방법론을 찾았음에도 그것을 찾는과정의 스트레스에 힘이 빠져 정작 실행하지 못하는 요즘 내모습과 묘하게 대비 되면서 중얼거려본다.
"Let it be..."
고통은 행복을 맛있게 하는 양념?
가끔 "행복"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선배 형과 자그마한 인간의 행복이라는거... 만들기보다는 찾는거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가출, 버림받음, 사랑없는 동거, 늦은 대학생활을 포기한 사랑의 죽음, 엄마의 외도에 이은 가출, 반항적인 딸, 익숙해진 막연한 잠자리, 결혼에 대한 거부반응... 책을 읽은 뒤 떠올려보는 마리 인생이다. 보통 사람이 겪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나름 파란만장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쯤 50이되어서야 또하나의 스쳐간 사랑을 인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내 삶이라고 굴곡의 높낮이는 다를지언정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올라 갔다. 내려갔다. 그게 삶이 아닐런지...
요즘 좀 많이 내려가긴했다. 하지만 소설을 마지막 페이지를 접으면서... '올라갈 타이밍도 오겠지...? 사는거 참 재미있는 거구만...' 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웃어버린다. 그런가 보다. 그렇게 고통과 즐거움이 병행하는게 인생이고 그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그렇게도 갈구하는 행복이 아닌가 하는... 고통은 그 행복을 더 맛있게 해주는 양념쯤...?^^
.
.
.
.
.
간만에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읽으며 푸~ㄱ 빠져 살았다. 다행이도 이번은 불륜이나 못갖춘 마디 같은 사랑 타령은 아니었다. 다음 즐거움은 뭐가 기다리고 있으려나...